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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

 

제도적으로 남성성이 거세된 성역할의 불구자이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곱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둥그렇게 붙은 목과 등의 살덩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골리앗 거미의 외피를 몸속에 새겨 넣고도 고작 하는 말은 “기집년들이 보면 환장하겠는걸?”에 지나지 않는다.넌 문신기술은 좋지만 도저히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뭉뚝한 발가락”으로 묘사되는 ‘나’의 외양은 미보다는 추에 가깝다. ‘나’에게 찾아오는 손님들이란 물리적 힘이라는 항목을 제한다면 ‘나’가 전혀 굴복할 이유가 없는 인생의 루저들이다. 전쟁 기념관에 전시된 명적, ‘나’와 ‘나’의 어머니의 손에 들린 것은 고작 바늘 하나 뿐이다.. 어머니가 욕망에 솔직한 결과는 결국 살해였고 살해에 쓰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는 다름 아닌 바늘이. , 성 역할의 전복도 아닌 지극히 여성스러운 예술 도구와 예술 행위를 통해 발산되는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목소리.. 한 사람의 남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작은 바늘 조각으로,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어머니는  ......

 

 

Index & Contents

여성의 힘에 대한 여성의 이야기 - 천운영의 바늘

 

여성의 힘에 대한 여성의 이야기 - 천운영의 <바늘> 에 대한 글입니다. 바늘97

 

천운영의 <바늘>의 주인공 여성은 남성들의 몸에 문신을 해주며 산다. 신분이나 경제력의 우위를 점령하여 여성의 힘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직업이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곱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둥그렇게 붙은 목과 등의 살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목소리. 뭉뚝한 발가락”으로 묘사되는 ‘나’의 외양은 미보다는 추에 가깝다. ‘나’의 어머니는 스님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해버리는, 남성 중심적 세계관에서 추앙해 마지않는 위대한 어머니 상과 매우 거리가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주인공 여성과 그의 어머니는 ‘강하다’. 전쟁 기념관에 전시된 명적, 칠지도부터 철침, 45구경 권총, 기관총에 탱크 등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무기라면, ‘나’와 ‘나’의 어머니의 손에 들린 것은 고작 바늘 하나 뿐이다. 바늘은 일반적으로 지극히 여성스러운 사물로 인식되며, 그 공격성이라고 해봤자 고작 살가죽에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 몇 방울에 불과하다. 바늘은 무기라기보다는 예술의 도구이다. 어머니는 바늘로 천에 수를 놓았고 ‘나’는 사람들의 몸에 무늬를 새겨준다. 그러나 ‘나’는 그 예술 행위로, 남자라는 물리적 우위에 서 있는 자들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어머니는 그 예술 도구를 이용해 욕망이 금지된 남성성을 살해한다.

‘나’에게 찾아오는 손님들이란 물리적 힘이라는 항목을 제한다면 ‘나’가 전혀 굴복할 이유가 없는 인생의 루저들이다. “네가 조금이라도 예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넌 문신기술은 좋지만 도저히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라는 말을 쉽게도 내뱉는 남자는 그녀의 바늘 앞에서 “체념이 무엇인지 아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골리앗 거미의 외피를 몸속에 새겨 넣고도 고작 하는 말은 “기집년들이 보면 환장하겠는걸?”에 지나지 않는다. ‘마산 대표’를 써 넣고자 했던 네모 속에 조선 시대 무관의 흉배 문양 속 호랑이와 오광을 새겨 넣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남자는 사십 평생을 화투판을 전전하고 돌아다닌 노름꾼에 불과하다. ‘기집년들이 환장할 외피’와 ‘인생에서 느긋할 수 있는 막강한 숨긴 패’를 고작 ‘나’의 바늘에서 찾는 남자들에게 ‘나’는 신이자 창조주가 될 수 있다. 어머니가 살해한 스님은 남자이긴 하지만 사회학적 의미의 ‘남성’은 될 수 없는, 제도적으로 남성성이 거세된 성역할의 불구자이다. 어머니가 욕망에 솔직한 결과는 결국 살해였고 살해에 쓰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는 다름 아닌 바늘이다. 한 사람의 남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작은 바늘 조각으로,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어머니는 스님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절대자가 된다. 결국 작품 안에서 여성의 힘은 남성 판타지의 충족도, 성 역할의 전복도 아닌 지극히 여성스러운 예술 도구와 예술 행위를 통해 발산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늘의 여성스러움이란 일반화된 관념과 남성 주의적 선입견이 아닌 그저 여성 그대로의 여성성으로, 그것은 육식을 즐기는 식성이나 편집증에 가까운 폐쇄성과 잔인함과는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는 여성의 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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